마이너는 정말 마이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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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26

글 심은록(AI 영화감독, 미술비평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우리 인류는 어디서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슬픈 역사를 반복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AI가 인간의 창작과 인식을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는 21세기의 한복판에 있다. 세계가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에 놓인 지금,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어째서 ‘단조로(In Minor Keys)’라는 주제 아래 여전히 ‘작은 목소리’를 이야기하는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국제미술전이 진행되고 있는 베니스의 전시 풍경을 바라보며 전쟁, 이주, 상실, 공동체 같은 인류가 안고 있는 오래된 문제를 왜 여전히 ‘마이너’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인간의 경험을 넘어선 현실이 등장하기 시작한 오늘날 진정한 주변부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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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계기로 일정이 조정되며 홀수 해엔 건축전, 짝수 해엔 미술전이 열리는 체제로 재편된 베니스 비엔날레. 그중 올해로 61회를 맞이한 국제미술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권위를 지닌 행사로 ‘미술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올해의 베니스 비엔날레(2026. 5. 9~11. 22)는 개막 전부터 갖가지 이슈가 휘몰아치며 마치 세계 정치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첫 아프리카 출신 여성 총감독으로 선임되며 주목받은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가 지난해 갑작스레 사망한 비보를 비롯해 러시아와 이스라엘 국가관을 둘러싼 논란, 심사위원 사퇴, 반전 시위와 일부 국가관의 일시 폐관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외부의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전시 주제인 ‘In Minor Keys’ 자체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전시는 디아스포라, 탈식민주의, 생태적 감수성, 공동체와 치유를 핵심 의제로 제시했지만, 이러한 담론은 이미 국제 현대미술의 ‘중심(major) 언어’가 되었다는 점에서 개념적 모순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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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결의 국가관 전시가 늘 흥미로운 ‘지아르디니’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루트는 크게 여러 나라 국가관이 모여 있는 지아르디니(이 글에는 국내 언론에서 많이 다룬 한국관은 담지 않았다), 그리고 본전시가 진행되는 아르세날레,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다(물론 무수한 장외 전시가 기다린다). 올해의 화제로 떠오른 국가관은 단연 플로렌티나 홀칭거(Florentina Holzinger)의 전시 <바다 세계 베니스(SEAWORLD VENICE)>를 선보이고 있는 오스트리아 파빌리온. 관객이 국가관 앞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입구 위에 매달린 거대한 종(鐘)이다. 퍼포머가 종의 추에 거꾸로 매달린 채 자신의 몸으로 종을 울리고,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 내부로 들어서면 전시장은 더 이상 국가관이라기보다 수 처리 시설과 놀이공원, 종교 건축이 결합된 거대한 기계 생명체처럼 보인다. 물이 흐르고 수조가 놓인 공간에서 퍼포머들은 제트스키를 타고 원형 수조를 돌거나 높은 기둥 위에 매달린다. 어떤 이는 투명한 수조 속에 잠수한 채 머물고, 어떤 이는 르네상스 제단화의 성인처럼 공중에 떠 있다. 관객이 사용하는 이동식 화장실의 오수(汚水)가 정화 과정을 거쳐 퍼포머가 머무는 투명 수조로 순환되는 장면은 물과 오물, 정화와 오염, 성스러움과 육체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뒤섞이는 과정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전시는 거대하고 충격적이며 압도적이었다.

일본관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이곳에는 소소하고 일상적이며 극적인 퍼포먼스도 없다. 대신 아라카와 에이 내시(荒川医+ナッシュ, Ei Arakawa-Nash)의 <풀의 아기들, 달의 아기들(Grass Babies, Moon Babies)>이 펼쳐지며 전시 공간 곳곳에 배치한 선글라스를 낀 아기 인형 수백 개가 관객을 맞이한다. 어떤 인형은 벽에 기대어 있고, 어떤 인형은 바닥에 앉아 있으며, 관객은 인형을 안고 전시장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고 귀여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불안감이 스며든다. 관객은 어느 순간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보호자 역할을 맡게 된다. 전시장 전체는 거대한 보육 시설이자 미래의 폐허처럼 느껴진다. 획일화된 표정과 동일한 규격의 아기 인형들은 미래 사회의 생명 재생산 시스템과 저출산 위기를 체험하게 한다.

반면 중국관 <夢溪(몽계)>는 미래 지향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공간이다. 전시는 북송의 과학자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을 출발점으로 삼아 1천 년 전의 지식 체계와 오늘날의 AI를 연결한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고전적 사유가 알고리즘과 생성형 AI 이미지로 끊임없이 변환되고 있다. 한쪽 벽면에는 폭 16m, 높이 6.5m에 이르는 왕동령의 대형 서예 설치 작품 ‘소요유(逍遙遊)’가 시선을 절로 사로잡는다. 장자의 <소요유>를 적은 이 작품은 자유분방한 필의(筆意)와 역동적인 필세(筆勢)를 통해 거대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장을 형성한다. 먹의 농담과 속도감 있는 필획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한 자연의 에너지와 산수의 유동적 흐름을 연상시키며, 문자와 이미지, 서예와 퍼포먼스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 앞에서는 AI를 탑재한 로봇이 왕동령의 필체를 학습해 ‘夢溪(몽계, Dream Stream)’라는 글자를 반복해서 써 내려간다. 1천 년의 문인 정신과 AI가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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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많은 작업 속 작가들의 목소리는 실제로 울리는가?
아르세날레 본전시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칼레드 삽사비(Khaled Sabsabi)의 ’자아와의 회의(Conference of the Self)’다. 8개의 채색 패널로 구성된 약 40m 길이의 ‘칼릴(Khalil, 벗)’은 거대한 숲이나 폭풍 속 소용돌이처럼 전시 공간 전체를 감싼다. 화면은 수없이 많은 선과 기호가 중첩된 거대한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까이 다가가면 얼굴과 손, 건물의 파편, 기도하는 인물과 고통스러운 표정이 드러난다. 작품은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파리드 아타르(Farid Attar)의 <새들의 회의(The Conference of the Birds)>를 바탕으로 한다. 원작에서 새들은 새의 왕 시모르그(Simorgh)를 찾아 7개의 세계를 여행하지만, 결국 답이 자신들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삽사비는 여기에 여덟 번째 영역인 ‘자아(self)’를 더한다. 관객은 작품 안에서 순례를 수행하고,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와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알프레도 하르(Alfredo Jaar)의 ‘세계의 끝(The End of the World)’은 제목이 암시하는 거대한 스펙터클과 정반대 작품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것은 한 변이 겨우 4cm에 불과한 작은 정육면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 그것을 들여다보고, 이 작은 물체가 코발트, 희토류, 구리, 주석, 니켈, 리튬, 망간, 콜탄, 게르마늄, 백금 등 디지털 문명과 군사 산업, 친환경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광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품의 힘은 극단적인 규모의 역전에 있다. 작은 큐브 안에는 광산과 채굴 현장, 전쟁 지역, 심해 채굴 구역, 배터리 공장과 반도체 산업, 미래의 우주 채굴 계획까지 응축되어 있다. 반짝이는 금속 표면 뒤에는 콩고의 콜탄 광산과 리튬 채굴지, 파괴된 생태계와 노동 현장이 숨어 있다. 우리가 손에 쥔 스마트폰과 전기차, AI 서버와 클라우드는 사실 이 작은 큐브에서 시작된다. 전쟁도, 친환경 산업도, AI 혁명도 결국 이 광물들을 둘러싼 경쟁 아래 작동한다. 하르는 거대한 재난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신, 재난의 원인인 물질 자체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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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오프닝 기간 동안 30명이 넘는 작가를 인터뷰했지만, 놀랍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을 먼저 언급한 작가는 거의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In Minor Keys’의 개념적 모순이 드러난다. 코요 쿠오 총감독은 생전에 음악의 단조에서 따온 이 문구를 설명하며 “우리가 지금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 놓치고 있는 낮은 주파수, 작은 목소리, 감각적 리듬에 귀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의 의도는 제대로 펼쳐지고 있을까? 전쟁, 이주, 상실, 공동체, 치유는 결코 ‘마이너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호메로스에서 성서와 불교 경전,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을 관통해온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메이저’ 서사다.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무엇을 전시하는가가 아니라, 왜 그것을 ‘마이너’라고 부르는가를 묻게 된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탈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는 국제 미술계의 주변부 담론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비엔날레와 도쿠멘타, 미술관과 대학, 출판계를 통해 국제 현대미술의 중심 언어로 자리 잡았다. 과거의 급진성은 제도의 상식이 되었고, 비판은 문화적 합의가 되었다. <아트 리뷰(Art Review)>의 제니 우는 이번 전시를 ‘구체적 요구가 없는 항의’이자 ‘생명력을 잃어가는 과거의 유물’이라고 평가했으며, 가디언(The Guardian)의 에디 프랭클 역시 ‘세상은 전쟁과 AI로 재편되고 있는데 비엔날레는 우리에게 휴식을 권한다’며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전시의 완성도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주변부’로 규정하고 누가 그 기준을 설정하는가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진정한 쟁점 중 하나는, 메이저와 마이너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여전히 유효한 인식 틀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과 3차원 공간에서 세계를 경험하지만, AI는 경험 없이 수백, 수천 개의 차원에서 관계를 연산하며 고차원적 현실을 해석한다. 이러한 전환은 ‘우리의 인식 체계는 어떻게 재구성되는가’, ‘알고리즘 권력은 어떤 새로운 식민주의를 생산하는가’, ‘인간 이후의 예술은 가능한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메이저도 마이너도 아닐지 모르겠다. 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충분히 사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메이저이자 마이너이며 동시에 포스트-마이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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