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it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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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6, 2023

글 고성연

아트 위크 도쿄(AWT) 2023


도시는 어떻게 플랫폼을 점차 ‘글로벌’하게 만드는가? 해외 방문객을 본격적으로 맞아들인 지난해 행사에 이어 올해 더 짜임새 있게 열린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AWT) 2023은 예년에 비해 훨씬 화려해진 가운데,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였던 것 같다. 그만큼 올해의 행사는 처음에는 현대미술을 필두로 한 도쿄의 다채로운 문화 공간과 콘텐츠를 소개하는 ‘쇼케이스’로 내세웠던 정체성을 둘러싼 변화의 모색이 스민 행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부티크 페어’라 할 만한 세일즈 플랫폼이 처음 등장한 ‘외연’에서 드러난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또 콘텐츠의 내용을 보자면 ‘아트 허브’를 둘러싼 아시아 도시들 간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미술이든, 건축이든, 디자인이든 ‘일본적인 것’을 세계적으로 포지셔닝하려는 노림수가 반영된 전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조심스러움과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 있는 AWT의 모습은 어쨌거나 도쿄라는 대도시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AWT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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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Week Tokyo 2023, 다양해진 프로그램 속 눈길 끈 ‘세일즈 플랫폼’
일본에서는 여전히 국경을 넘나드는 데 꽤 엄격했던 팬데믹 기간인 2021년 가을 ‘소프트 론칭’ 형태로 첫선을 보인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AWT)는 ‘축제형 쇼케이스’를 표방했다. 누구나 ‘AWT PASS’라는 모바일 앱을 내려받아 AWT 로고가 새겨진 전용 버스를 타고(물론 지하철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돈다) 도쿄 시내의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을 비롯해 각종 아트 스페이스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미술계의 글로벌 행사로 기획됐다. 다케 니나가와 갤러리를 이끌고 있는 니나가와 아쓰코(Atsuko Ninagawa)의 제안에서 싹튼 이 행사는 든든한 공적 지원(정부와 도쿄 도청)을 등에 업고 내국인 대상으로만 2만 명의 참가를 끌어모았으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냈고, 이듬해인 2022년 가을, 규모를 키운 ‘확장형 버전’으로 드디어 다국적 손님을 맞이했다. 글로벌 아트 페어의 강자인 아트 바젤과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고 해외 VIP 컬렉터들을 초청했으며, 내국인의 호응도 더 이끌어내면서 3만2천 명가량의 방문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필자는 작년에도 AWT 현장을 찾았는데, ‘아트 바젤’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페어(fair)’가 어떤 형식이나 규모로든 생겨나리라는 예감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리고 올가을 나흘간(11월 2~5일)의 공식 일정으로 개최된 AWT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작은 페어가 등장했다. AWT의 파트너이자 도쿄의 상징적인 럭셔리 호텔인 더 오쿠라 도쿄(The Okura Tokyo) 부지 내 소규모 미술관인 오쿠라 미술관에서 ‘AWT 포커스(AWT Focus)’라는 페어가 열렸다. 전후 일본의 아방가르드를 이끈 구타이 그룹의 리더 요시하라 지로, 다나카 아쓰코를 비롯해 1960년대 말 모노하 운동을 이끈 이우환(한국 작가) 등 일본에서 활동하는 작가 64명의 1백 점 넘는 작품이 <Worlds in Balance: Art in Japan from the Postwar to the Present>라는 기획전 형식으로 선보였는데, 시가현 미술관장인 호사카 겐지로가 큐레이팅을 맡았다. 아트 바젤 디렉터 빈센조 드 벨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뮤지엄급 작품을 엄선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도 반응이 꽤 좋았다. 3회 만에 결국은 아트 페어를 성공적으로 품고 ‘하이브리드’ 성격을 띠게 된 AWT가 내년에 펼쳐낼 풍경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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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층에 들어선 현대미술관부터 역대급 호크니 전시를 꾸린 MOT까지
아트 위크 도쿄의 등장으로 도쿄 미술계에 생긴 한 가지 의미 있는 변화는 11월 첫 번째 주가 ‘미술 주간(Art Week)’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아트 위크’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았던 로컬 갤러리업계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외려 직간접적으로 적극 참여하려는 모양새가 은근히 눈에 보여 흥미롭다. 하지만 50개 기관⋅조직(39개 갤러리+11개 미술관과 아트 스페이스)이 공식 참여하는 골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AWT의 입장이다. 도쿄에는 이미 다수의 명성 높은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아트 위크’라는 콘셉트는 확실히 집중적으로 감상하면서 통찰력을 얻게 해주는 이점이 있다. 올해 AWT 2023 미술관 전시 명단을 보자면 현대미술관 MOT에서 27년 만에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형 기획전이 AWT 2023과 동시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지난해 이우환 회고전을 열었던 도쿄 국립 신미술관에서는 이브 생 로랑 전시와 오마키 신지 개인전이 펼쳐졌고, 모리 타워 53층에 자리 잡은 롯폰기의 명물인 모리 아트 뮤지엄에서는 전 지구적 환경 위기를 다룬 기획전 <Our Ecology: Toward a Planetary Living>을 선보였다. 모리의 기획전은 모니카 알 카디리, 피에르 위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같은 세계적인 미술가들와 더불어 환경 위기에 대한 경종을 나름의 방식으로 울리는 일본 작가들의 조합이 돋보인 전시로 내년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에 자리한 아티존 뮤지엄을 비롯해 올해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와타리움 등 AWT에 공식 합류한 미술관 중 상당수가 일본의 근현대미술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콘텐츠 구성을 내놓아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컨대 와타리움은 19세기 일본과 튀르키예의 관계에 여러모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던 야마다 도라지로의 삶을 조명한 기획전을,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에서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특유의 담담하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이시가와 마오의 사진전을 선보였다. 또 타이어 업체로 유명한 브리지스톤을 모태로 한 이시바시 재단이 운영하는 아티존 뮤지엄은 2023년 타계한 교지 노미야마의 섹션을 위시해 일본 작가와 해외 작가의 균형을 살린 소장품 전시를 펼치고 있다.


The Muse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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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글로벌을 향해 날갯짓을 하는 갤러리 풍경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 도쿄는 명실공히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메트로폴리스로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드’다. 건축, 조경, 미식, 문화 예술, 쇼핑 등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풍부하게 받쳐준다. 이 같은 화려한 위용에 비해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WT가 ‘쇼케이스’로 출발했고, 점차 ‘하이브리드’ 성격을 가미하고 있는 추세도 아마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 신중하고 영리한 전략 아니겠는가. 팬데믹 기간에 미술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열기를 띠면서 ‘아트 허브’라는 명성을 둘러싼 아시아 주요 도시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아시아의 주요 거점 도시들이 저마다의 매력도를 더 끌어올린다는 건 전체 파이를 키우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선의의 경쟁으로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을 듯싶다.
일본의 상업 화랑들은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을 향한 행보를 열심히 펼치고 있는데 실제로 방문했을 때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어쩌면 도쿄라는 도시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공간을 나름의 심미적 방식으로 꾸리고 있는 모습이 재미나다. 한국의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의 소속 갤러리이기도 한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는 도쿄 다이토구에 커다란 목욕탕을 개조한 전시 공간을 두고 있고, 일본에 현대미술을 소개한 선구자격인 도쿄 갤러리 + BTAP, 현대 사진의 거장인 스기모토 히로시가 소속된 갤러리 고야나기, 올해 AWT에서 우리나라 단색화 거장인 하종현 개인전(내년 1월 6일까지)을 연 블럼, 런던에서 활동하다 현재 일본에서 활약 중인 데라우치 요코의 인상적인 전시를 선보인 하기와라 프로젝트 등도 꼽을 수 있다. 또 갤러리 페로탕 도쿄와 타로 나수, 코타로 누카가 등이 들어서 있는 피라미드 빌딩과 도미오 고야마, 슈고아츠 등이 속한 콤플렉스665가 롯폰기에서 지척에 자리하면서 ‘갤러리 컴플렉스’ 역할을 해 ‘발품’의 질을 높여준다. 여기서 멀지 않은 새로운 명소인 아자부다이 힐스에 내년 봄 글로벌 메가 브랜드인 페이스 갤러리가 입주할 예정이라 도쿄의 갤러리 풍경은 더 활기를 띨 듯싶다(이 마천루에는 모리 그룹에서 꾸리는 새 전시 공간도 이미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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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ll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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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다운 저력을 보여주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아트 공간
산업의 예술화 경향은 20세기 초반부터 나타났고, 트렌드에 민감한 럭셔리 브랜드는 문화 예술과 친한 편이라는 사실은 전혀 비밀이 아니다. 아니, 특정 브랜드는 ‘예술’을 하려고 사업으로 수익을 내나 싶을 정도로, 적어도 겉보기에는 진심을 다하고 내용 면에서도 출중한 컬렉션과 전시 공간을 두루 갖추고 있다. 도쿄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사랑이 몰리는 도시다. 럭셔리 분야에서도 웬만한 글로벌 메트로폴리스에서도 접하기 쉽지 않은 최상위 하이엔드를 위시해 다채로운 층위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에르메스, 루이 비통, 프라다 등 예슬 후원과 마케팅에 두각을 나타내 온 브랜드들의 매장 디자인과 부속 전시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기도 할 정도다. 특히 긴자에 있는 메종 에르메스 옆에 별도 입구로 들어가도록 동선을 짠 전시 공간인 르 포럼(Le Forum)은 복층으로 된 공간의 구성이며 규모, 오라가 부러울 만큼 빼어나다(솔직히 소중한 전시 공간이기는 하지만 서울 도산의 아뜰리에 에르메스 공간이 다소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마침 AWT 2023 기간에 최재은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이 매혹적인 공간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전시의 미학을 뿜어낸다. 생태 위기를 오래도록 차분히 고찰해온 작가의 내공이 담긴 는 도쿄를 찾을 일이 있다면 ‘강추’하는 전시다(내년 1월 28일까지). 또 명품 브랜드들의 건축과 디자인을 보는 즐거움이 넘치는 아오야마로 가면 스위스 건축회사 HdM의 명작으로 꼽히는 프라다 아오야마, 아트 바젤 등 글로벌 현대미술 행사를 후원해온 샴페인 브랜드 루이나 등의 전시 공간과 매장을 함께 둘러볼 수 있고, 가까이에 루이 비통 오모테산도 매장 건물 7층에 자리한 전시 공간도 있다. 또 일본 전통의 아트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공간을 꾸려온 시세이도 갤러리와 폴라 뮤지엄 아넥스의 존재감도 잊지 말자.

Luxury Brands &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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