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8/19 WINTER SPECIAL]_It’s hip! it’s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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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2, 2019

글 김민서 | edited by 고성연

예술이 특정 계층을 위한 전유물이란 인식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갖춘 기획자들은 보다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과감하게 대중적 코드를 활용하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콘텐츠를 퍼 나르는 소셜네트워크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이제는 유니온아트페어나 틈새 아트 마켓 같은 새로운 예술 시장이 등장하면서 고고하게 느껴지던 ‘컬렉터’의 문턱이 낮아졌고, 미술을 향유하는 계층과 방식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양상이다. 요즘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의 성향을 살펴봐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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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여러 해석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분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답 없는 어려운 논술 문제로 느껴진다면 그 간극은 도무지 좁힐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현대미술의 딜레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균소득 기준에서 일반적인 대중이 접근 가능한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관람객을 배려한 친절함과 주제의 명확성이 어느 정도 수반되어야 한다. 사실 1960년대 미국의 심장 뉴욕을 중심으로 팝아트의 물결이 일렁일 때 이미 선구적인 작가들은 대중에 초점을 맞춘, 그렇지만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메시지를 담은 예술을 영리하게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엘리트주의를 공격하면서 대중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접근성도 뛰어난 예술 세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했던 행보가 팝아트의 주요한 공헌이었고, 많은 이들이 이에 열광했다. 물론 팝아트는 현대미술의 한 경향일 뿐이고, 이 생태계를 둘러싼 전반적인 난해함은 이후로도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21세기는 확실히 대중 친화적인 예술이 보다 효과적으로 소통되고 환영받을 만한 환경을 갖춘 시대다.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하고 문화를 공유하고 소비하는 의식이 당연한 듯 확대되자 최근 몇 년 사이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인식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깨지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유명 작가의 포토제닉한 작품과 전시장 벽면에 붙은 멋진 문구가 인증 사진으로 올라오고, 너도나도 그 전시를 봤다는 댓글을 달며 ‘좋아요’를 누른다. 사람들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예술을 공유하며 즐기고 있으며, 이에 전시 기획자들도 좀 더 대중 친화적인 아이템을 찾아 나서게 된다(하지만 이는 예술에 담긴 메시지나 철학이 대중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또 ‘보통’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합리적 가격의 작품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갤러리도 많아졌다. 대중이 예술을 보다 가깝게 느끼도록 유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일상의 평범한 요소를 전시에 세련되게 접목하는 것이다. 요즘 서울의 아트 신을 보면 이처럼 대중 친화적인 콘텐츠가 유독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는 아트 토이나 패션을 들 수 있으며, 상업적인 재생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팝아트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예술의 한 장르가 된 패션
대림미술관은 비교적 친근한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관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인식을 퍼뜨리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국내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시작해 현대미술부터 디자인 전시까지 감각적이고 세련된 기획과 이벤트로 20대 관람객이 특히 많이 찾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사진전 <워크 인 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 등 패션이라는 대중적 코드를 예술에 접목하는 방식도 자주 활용했다. 현재 대림미술관에서는 <보그>, <데이즈드> 등 다수 패션 매거진과 작업한 포토그래퍼 코코 카피탄(Coco Capita´n)의 아시아 최초 전시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Coco Capita´n: Is It Tomorrow Yet?)>를 개최하고 있다(1월 27일까지). 명품 브랜드 구찌와의 협업으로 명성을 얻은 그의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고민을 담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KT & 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에서 또 다른 패션 사진전이 진행 중이다. 영국의 패션 포토그래퍼 노먼 파킨슨(Norman Parkinson)의 회고전 <스타일은 영원하다>가 그것. 2014년에 열린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 사진전을 시작으로 프랑스 그래픽 디자이너 레몽 사비냐크(Raymond Savignac), 장자크 상페(Jean-Jacques Sempe´),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화 작가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등에 이은 ‘20세기 거장 시리즈’의 여섯 번째 기획전이다. 서울숲 갤러리아포레에 위치한 더서울라이티움에서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원작 책 표지를 그리면서 패션계에서 단박에 명성을 얻은 메간 헤스(Megan Hess)의 패션 일러스트 전시 <메간 헤스 아이코닉>이 오는 3월까지 열린다. 스트리트 팝 아티스트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 피겨 아티스트 마이클 라우(Michael Lau),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등 대형 전시를 열어온 최요한 예술감독이 기획한 전시로,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팝아트
요즘 국내 전시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 장르를 들라면 팝아트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팝아트는 다른 미술 작품에 비해 2차 상품으로 재가공할 수 있고, 비교적 쉽게 소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자와 관람객 모두에게 매력적인 장르다. 되돌아보면 2014년 시작된 석촌호수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할 수 있는데, 송파구청과 롯데월드몰이 공동 주최한 이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설치미술 작가 플로렌테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의 ‘러버덕’을 시작으로 소셜네트워크상에서 상당히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석촌호수에 떠 있는 거대한 노란색 러버덕을 찍어 올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술을 향유했다. 이후 미국 출신 공공 미술 작가 그룹 ‘프렌즈 위드 유(Friends with You)’의 ‘슈퍼문’, 2017년에는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또 다른 작품 ‘스위트 스완’을 설치했으며 지난여름에는 미국의 인기 팝 아티스트 카우스(KAWS)의 신작 ‘카우스: 홀리데이’가 한 달가량 석촌호수에 떠 있었다. 카우스를 대표하는 ‘컴패니언(Companion)’이란 피겨는 꼼데가르송, 나이키, 반스 등 브랜드를 통해 친숙해진 캐릭터다. 이렇게 한 달 동안 계속된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송파구와 석촌호수 일대에 5백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불러 모아 실질적으로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앤디 워홀 이후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케니 샤프(Kenny Scharf)와 키스 해링(Keith Haring) 전시가 각각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케니 샤프와 키스 해링은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와 함께 미국의 팝아트를 이끌어온 라이벌이자 절친한 동료였다. 키스 해링이 간결한 선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유머러스한 그림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면, 케니 샤프는 친숙한 캐릭터에 다소 파격적인 화풍을 더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둘은 동시대를 살며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지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는 DDP에서 3월 17일까지,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는 3월 3일까지 잠실에 위치한 롯데뮤지엄에서 개최된다. 케니 샤프와 키스 해링에 이어 ‘네오 팝 아티스트’로 불리는 로메로 브리토(Romero Britto)의 <컬러 오브 원더랜드(Color of Wonderland)>가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3월 10일까지 계속된다. 혹시 올겨울 파리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키스 해링과 케니 샤프의 동시대 아티스트이자 친구였던 장미셸 바스키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만하다(1월 중순까지).



일러스트와 회화의 접점, 새로운 시장의 등장
작가가 대중과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는 기업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빈번히 이뤄진다. 몇 달 전 DDP에서 열린 미술 장터 2018 아트마이닝-서울에서 벽에 거는 작품마다 즉시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끈 우국원 작가는 코오롱, 제일모직 등 기업과의 작업을 통해 대중에게 접근했다. 지난해 3월에 열린 도쿄 아트 페어 2018에서 우국원 작가의 그림을 구입한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마스다 무네아키(Muneaki Masuda) 회장은 모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가 “장미셸 바스키아 못지않게 인정받을 것”이라며 호평하기도 했다. 혁오밴드의 앨범 재킷 그림으로 이름을 알린 노상호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 ‘네모난’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2.7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스타 작가다. 현재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그가 매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를 수집해 그린 작품들을 소개한다. 소셜네트워크에서 본 적 있을 것 같은 친숙한 이미지들이 마치 편집숍처럼 옷걸이에 걸려 진열돼 있다. 전시장을 찾으면 경직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는 작가는 이러한 전시 방식을 통해 옷 가게에서 옷을 보듯 편하게 그림을 보고 감상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우국원 작가나 노상호 작가의 작품은 대중이 쉽게 지갑을 열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니지만, 순수 회화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화풍과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2017년 한남동에 문을 연 알부스갤러리처럼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갤러리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알부스갤러리는 유제프 빌콘(Jozef Wilkon),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고, 현재는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프랑스 출신 작가 티보 에렘(Thibaud He´rem)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렇듯 미술 시장이 세분화되자 다양한 예술 장르를 발굴하고 소개하려는 갤러리가 점차 더 늘어나고, 보다 다양한 작가들이 대중에게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신사동 이길이구갤러리에서 열린 일본 작가 다카하시 모구(Mogu Takahashi)의 전시 <Piece of Joy>는 평일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던 성공적인 예다. 다카하시 모구는 스웨덴 브랜드 ‘리틀 레드 스투가(Little Red Stuga)’를 비롯해 전 세계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온 작가다. 이길이구갤러리의 백운아 대표는 다카하시 모구와 같은 순수미술과 일러스트 사이에 놓인 작가들은 “기존의 순수 미술과 완전히 다른 시장에 존재한다”며 “5~7년 사이 미술을 투자 가치가 아니라 취향으로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은 좀 더 현명하게 미술을 소비하는 새로운 컬렉터층”이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카하시 모구 전시를 찾은 관람객층을 보면 20대 대학생이 가장 많았는데, 이들이 10만~20만원대 원화를 구입하기를 주저하지 않아 전시작의 85%가 판매되는 성적을 기록했다. 이처럼 고무적인 결과에 힙입어 이길이구갤러리는 2월 21일까지 아르망, 샤갈, 김환기 등 거장들의 에디션 판화를 전시하는 <프린트 마스터피스(Print Master-pieces)>를 연다.



작금의 대중 친화적인 풍토는 미술을 단지 투자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내 방 안에 걸고 싶은 그림’처럼 좀 더 부담 없이 접근하는 이들이 많아졌음을 증명한다. 이 같은 풍경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타인과 소통하기 쉬워진 디지털 시대의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발달, 그리고 중저가 미술 장터 유니온아트페어나 갤러리 아트 숍 프린트베이커리 등 예술을 보다 쉽게 접하고 구입할 수 있는 판로가 늘어난 전반적인 생태계의 변화와 함께 조성된 것일 테고 말이다. 다양한 현대미술의 면면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관심과 성찰도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예술 자체를 친근하게 느끼고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선결 과제라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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