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 사이의 ‘작은 오아시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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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4, 2026

고성연(타이베이 현지 취재)



타이베이(Taipei) 이야기

대만 땅에 첫 발걸음을 디딘 여정에서 필자의 뇌리에 진하게 각인된 첫인상은 ‘오리고기 스시’였다. 타이베이(臺北)의 한 호텔에 짐을 풀고는 북동부의 일란(宜蘭) 지방으로 이동해 행사에 참석했는데, 사후 피로연에서 ‘cherry duck’이라 불리는 명물 오리고기를 ‘예술적으로’ 뭉친 윤기 나는 밥알 위에 정성스럽게 얹어 건네주는 스시가 제일 인기를 끌었다. 런던 유학 시절, 유난히 음식을 즐기고 요리도 잘하는 대만 친구를 뒀기에 자연스레 미식의 나라로서 기대치가 높아진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식도락의 쾌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맛 자체는 선연하게 떠올릴 수 없지만 그 미각을 맞닥뜨린 순간만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듯 이채로움과 품격을 동시에 갖춘 미식의 위용에 비하면 ‘시각적 스펙터클’은 수도인 타이베이로 돌아가서도 꽤 심심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509.2m)을 위시해 고층 건물들이 그려내는 날렵한 스카이라인이 나름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세련된 화려함의 퍼레이드는 아니었다. 대만의 개발은 ‘선남후북’으로 진행됐고 ‘타이베이시’라는 행정상 명칭도 1920년에야 등장했다고 하니, 타이베이는 분명 현대적인 도시지만 오래된 감성을 품은 건물이 많다. 빽빽한 고층 건물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도시 이미지의 서울에서 자란 영향일까? 타이베이의 고아(古雅)한 매력은 오랜 세월 속 풍파를 겪으면서도 기품 있게 여문 나이테처럼 정겹고 근사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많았다.



그 이후로도 타이베이에 여러 차례 가봤지만 딱히 번화한 상점가에서 열렬히 쇼핑을 즐기거나 블로그 또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상에 자주 등장하는 ‘핫플’ 투어를 해본 적은 거의 없다. 늘상 비엔날레, 아트 페어,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 오프닝 등으로 점철된 동시대 미술을 탐색하는 ‘출장 루트’를 소화하느라 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타이베이 101 근처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에 문을 연 럭셔리 카페 바샤 커피(서울 플래그십 매장보다 반년 정도 일찍 들어섰다), 단순한 서점을 넘어 대만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한 청핀 서점, 유장한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국립고궁박물원이나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외관의 웅장함에 이끌려 구경하게 된 국립중정기념당 등이 방문지 목록에 들어 있다. 한국 여행자들이 필수 코스처럼 섭렵하는 딤섬 전문점 딘타이펑도 아주 최근에야 가봤다. 개인적으로는 명물로 여겨지는 샤오룽바오보다 볶음밥이 더 맛났던 딘타이펑의 본점이 자리한 용캉제 일대는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찾는 동네 중 하나인데, 대만다운 예스러운 감성이 흐르는 가운데 아기자기한 기념품 숍이나 디저트 가게, 카페 등이 모여 있다. 이 동네는 중국 베이징 출신의 저자로 꾸준히, 자주 대만의 도시를 탐방해온 여행 작가 시린(喜琳)이 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사실 책을 사두고도 항상 바쁜 출장 탓에 꼼꼼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 초, 타이베이 도심에서 빌딩 숲이 빚어내는 언뜻 흔하고 건조한 풍경 이면에 자리한 작고 활기찬 동네를 산책하게 됐다. 타이베이 동쪽 쑹산구(松山區)에 위치한 민생 커뮤니티/푸진제(民生, 富錦街區) 일대. 쑹산구는 K-팝 스타들의 공연 무대로도 자주 등장하는 타이베이 아레나, 라오허 야시장, 쑹산 공항 등이 위치한, 타이베이 101로 대표되는 신이구, 젊은이들이 몰리는 시먼딩, 레스토랑 등이 밀집한 중산구 같은 다른 핵심 상업지에 비하면 덜 번화하고 차분하게 다가오는 지역이다. 원래 필자에게 쑹산구의 이미지는 키가 훤칠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대로인 ‘둔화북로’로 강하게 박혀 있었다. 마침 타이베이 럭셔리 호텔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온 만다린 오리엔탈 타이베이와 지난봄 새롭게 등장한 카펠라 타이베이가 모두 둔화북로에 자리한다. 타이베이 101이나 국립고궁박물원, 유서 깊은 타이베이 비엔날레가 열리는 타이베이 시립미술관(TFAM) 같은 명소들이 그리 멀지 않아 도심의 핵심 상권은 아니지만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그런데 둔화북로를 거닐다가 살짝 방향을 틀면 갑자기 도시의 리듬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민생 커뮤니티/푸진제 일대가 나온다. 알고 보니 출간된 지 10년쯤 된 시린의 책에서 애정을 담아 한 챕터로 다룬 ‘라이프스타일 거리’ 중 하나다. 현지 감성의 부티크, 라이프스타일 숍, 개성이 돋보이는 카페 등이 포진해 있지만, 주거 지역과 조화롭게 섞인 ‘감성 산책길’의 초기 단계를 담아낸 셈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더 다채로운 풍경으로 진화했지만 여전히 나무 그늘길 따라 여유로운 산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작은 오아시스’로서의 면면이 빛난다. 어째서 이 일대는 우리의 신사동 가로수길 사례처럼 문화적 다양성이 희석되고 상권이 지루해진 아쉬운 변화를 피해 간 걸까?





Taipei Story

01 타이베이(Taipei) 이야기_빌딩 숲 사이의 ‘작은 오아시스’를 보다 보러 가기
02. 쑹산구 ‘감성 산책길’_도시의 리듬 속 여유로이 거닐기 보러 가기
03. 카펠라 타이베이(Capella Taipei)_‘의미 있는 발견’이 시작되는 캔버스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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