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허리’ 도시는 어떻게 문화적 존재감을 키워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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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4, 2026

글 고성연



타이중(Taichung) 이야기 

잘 알려졌듯 한국과 대만은 근현대사의 주요 궤적에서 공통분모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19세기 말부터 민족을 고달프게 했던 전쟁과 식민지 시절(일본의 지배), 종전 이후 가파른 경제성장, 민주화 과정에서의 시련 등 굵직한 타임라인을 보면 놀랄 정도로 닮았다. 그렇지만 어떤 나라와 도시, 개인이든 저마다의 소우주를 품고 있듯, 그 속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개성이 넘실댄다. 젠체하지 않는 태도와 외양, 허세 깃든 낭비를 줄이는 검소함과 내실을 다지는 문화, 자유롭고 진보적인 정신을 추구하는 지적 토양…. 중부의 ‘허브’ 역할을 하는 타이중(Taichung)은 ‘대만’ 하면 떠오르는 인상의 주요 요소를 갖췄으면서도 ‘중용의 미학’이 두드러지는 도시다. 산업 성장과 더불어 정책적 문화 인프라까지 가세해 어느덧 ‘글로벌 문화 도시’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고 있다. 문화 도시로의 변화상에 맞물린 타이중의 발자취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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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서쪽 끝자락, 일본열도와 필리핀 사이에 자리한 작은 섬나라 대만. 면적은 한반도의 6분의 1 수준(약 36,197km², 대만 행정원 기준)으로 경상도보다 좀 큰 정도인데, 수도인 타이베이 같은 도시의 경계를 조금만 벗어나면 ‘보물섬(寶島)’이라는 수식어를 증명하듯 수려하고 다채로운 자연환경이 펼쳐진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이 2백 개가 넘을 정도로 인상적인 산악 지형을 품고 있고, ‘본토’ 역할을 하는 타이완(대만)섬을 위시해 1백68개의 섬이 해안 영토를 이루고 있다.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인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다 빼어난 풍광에 반해 ‘일하 포모사(Ilha Formosa, 아름다운 섬이란 뜻)’라 부른 걸 계기로, 지금도 대만에는 ‘포모사’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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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대다수 여행자들처럼 북쪽에 있는 타이베이를 첫 발판으로 대만과 안면을 텄는데, 그 뒤로 살짝 ‘도장 깨기’ 느낌으로 차근차근 도시들을 탐색해오고 있다. 주로 고속열차(HSR) 노선에서 더 남쪽에 자리한 주요 도시, 그러니까 타이베이 → 타이중 → 타이난 → 가오슝(줘잉역) 등을 목록에 더해가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아마도 관광객들한테는 1순위로 여겨지지 않을 법한 중부 지역의 도시 타이중을 유독 자주 찾게 됐는데, 방문 횟수를 얼추 세어보면 최근 몇 년 사이 예닐곱 번에 이르렀다. 대만 현지인들도 “뭐, 타이베이나 가오슝이 아니라 타이중을 그렇게 많이 찾았다고?”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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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각각의 체류 기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꽤 자주 찾은 셈이 됐는데, 우연과 필연으로 엮인 수차례 여정의 배경에는 문화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깔려 있다.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크고 작은 문화 공간이 꾸준히 생기면서 시민뿐 아니라 타지인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감을 쌓아간 이력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대만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중간’에 자리해 여러 도시를 오갈 때 편히 들르게 되는 타이중의 지리적 위치 덕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사회·지리·정치·경제·문화 등 여러모로 ‘중간 지대’로서의 면면을 지닌 타이중은 21세기 들어 ‘제2의 도시’이자 ‘문화적 거점’으로 부상해온 도시 사례다.



NTMoFA 국립 타이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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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vs 가오슝, 제2의 도시는 어디?
동쪽은 구릉, 서쪽은 고원으로 이뤄지며 강과 개울이 흐르는,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닌 대만 중부의 심장 같은 도시 타이중. 특히 일치시대에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굳이 짝 맞추기를 하자면, 이 나라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의 중심축인 타이베이는 서울, 남부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가오슝은 부산을 자연스레 연상시키는데, 타이중은 딱히 조합할 만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속철 기준으로 타이베이에서 40~50분 소요되는 거리로, 중부 내륙권에 속한다는 점에서는 대전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무게감은 확실히 다르다. 대만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인구(2백86만여 명)를 지닌 직할시로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이며 농업은 물론 정밀기계 같은 제조업, 경공업 등 다각화된 산업구조를 지녔고,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한 도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중부 경제권을 이끄는 ‘균형 잡힌’ 도시. 그래서 공공연히 ‘대만 제2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내걸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의 현지 지인들은 “내 마음의 제2 도시는 여전히 가오슝”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순위는 바뀌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대만의 도시 지형은 2010년 말 거국적으로 단행한 행정 개편에 따라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넓은 대로와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산업 도시인 타이중시와 길게 펼쳐진 초록의 평야를 거느린 타이중현을 통합하면서 가오슝(2백70만 명대)을 제치고 제2 도시의 위상을 거머쥐게 되어서다. 그런데 첫 방문 시(2023년) 이 점을 몰랐던 여행자로서 필자의 뇌리에 타이중은 온통 녹색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풍경의 중심에 첨단 인프라와 문화가 발달한 존재감 넘치는 커다란 도시의 이미지부터 새겨졌다. 타이중 산악 지대의 온천 마을 구꽌, 그리고 주로 난터우현에 속하지만 타이중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아름다운 산상 호수 르웨탄(日月潭)부터 찾았기 때문이다.


NTT 타이중 국가가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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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굴곡 속 뿌리 내린 문화적 토양
분명 인구, 경제력을 갖춘 문화 중심지로서 타이중의 부상은 전략적 정책의 소산이기도 하다. 첫 단추는 일치 시대인 20세기 전반기에 끼워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일본은 타이베이(총독부), 타이난(옛 수도) 사이의 중간 거점인 타이중(옛 이름 다툰)에서 근대화 사업을 시작했다. 1903년에 타이중 공원이 조성되었고, 1917년에 르네상스풍의 타이중 기차역이, 그리고 1924년에는 타이중 시청이 완공되었다(타이중시는 공식적으로 1920년 설립). 경제는 번영을 누렸지만 자원은 일본 전쟁에 쓰였던 강점기 시절에도 문화 도시 역할을 했다. ‘대만 의회의 아버지’로 불리는 린셴탕(林獻堂, 1881~1956)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은 문화적 자각과 민족주의의 불을 지피면서, 1927년에는 문화 운동 본부를 타이중으로 옮겼다. 린셴탕은 대만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문가 린(Lin)씨 집안의 후손이다. 타이중의 명소로 유명한 우평(Wufeng) 임가화원에 가면 이 가문이 청나라 시대부터 지은 대규모 전통 가옥과 정원, 오브제 등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다만 운영 주체가 여럿이라 표도 여러 장 사야 하므로 목적에 따른 동선을 미리 면밀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후퇴한 국민당은 1949년 계엄 독재 체제를 구축했는데, 이듬해 타이중을 특별행정구로 지정했고, 이는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로 작용했다.
문화적 도약의 새로운 계기는 1980년대 후반에야 찾아왔다. 40년 가까이(38년 1개월 25일) 지속됐던 계엄령이 1987년 해제되고 난 뒤 국가주의는 해체되기 시작했고, 국어 정책(정통성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한자의 적통인 번체자를 표준으로 삼고 엄격히 통제했다)도 점차 느슨해졌다. 대만은 사실 원주민이 6천여 년 전부터 살았던, 언어가 47종이나 되는 정글 같은 문화를 지니지 않았던가. 다양한 문화를 통한 정체성 찾기에 나서는 과정에서 타이베이에 집중된 문화 인프라를 분산하는 차원에서 국립급 미술관을 중부의 거점 도시인 타이중에 열었다(1988년). 현재도 현대미술관으로는 유일한 ‘국립’인 국립 타이완 미술관(이하 NTMoFA)이다. 타이중은 전통적으로 국민당과 민진당이 접전을 거듭하는 ‘스윙’ 지역으로의 중요성도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1999년 지진으로 임시 폐쇄되었다가 2004년 재개관한 NTMoFA는 글로벌 무대에서 명함을 내밀 만한 작가들과 비엔날레 같은 국제 미술전이 열리는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타이중시와 현이 통합된 이후인 2014년에는 공연 예술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 시설로 역시 국립인 타이중 국가가극원(이하 NTT)도 들어섰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의 건축 거장 이토 도요(Toyo Ito)가 설계한 NTT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곡선형 벽 구조만으로 설계된, 파사드의 와인잔/병 모양 패턴이 밤이면 더욱 매력적인 독특한 건축미를 뽐낸다. 전통 경극(오페라)부터 민속음악, 클래식, 무용, 아트 & 테크 등 다양한 공연 스펙트럼을 지닌 시민들의 전당이다. 지난 11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이탈리아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순회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TcAM 타이중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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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대열에 합류한 ‘뮤지엄브러리’
내실도 외형도 알찬 문화 도시로 나아가는 타이중의 여정은 점점 더 활발하게 전개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중순 개관한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Taichung Green Museumbrary)는 이 같은 행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문화적 자산. 역시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거장 듀오인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 SANAA에서 설계를 맡았는데, ‘2개의 공간, 하나의 비전’이라는 구호처럼 ‘공원 속 도서관+미술관’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다. 57,996㎡(약 1만7천5백 평)에 이르는 방대한 면적을 바탕으로 다양한 8개 덩어리로 이뤄진 뮤지엄브러리는 7층짜리 도서관, 6층짜리 현대미술관인 타이중 미술관(이하 TcAM)을 두고 있고, 그 사이에는 공통의 로비(야외 공원으로도 통하는) 같은 역할을 하는 열린 공간이 분수를 머금은 채 펼쳐져 있다. 타이중시에서 큰 예산(한화 2천5백억원 규모)을 투입해 빚어낸 이 복합 문화 공간은 시 소장 서적과 미술품을 옮겨 와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플랫폼이다. 특히 TcAM는 아무래도 국립인 만큼 대만의 현대미술과 해외 미술을 균형감 있게 아우르는 데 초점을 맞춘 NTMoFA에 비해 다국적 작가들을 내세운 수준 높은 기획전을 꾸리면서도 중부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색하는 행보를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층고가 무려 27m에 이르는 공간에 나선형 경사로가 감싸는 시원한 미술관 아트리움에 놓인 커미션 작품은 양혜규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 ‘유동 봉헌 – 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 – Tree Shade Triad)’(2025)인데, 일명 ‘우주나무’ 시리즈로 불리는 이 작업 역시 양 작가가 타이중의 숲과 절 등을 몸소 방문하는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짙은 녹색을 주된 색상으로 삼아 고목의 문화적 상징성과 자연을 담아냈다.
이 인상적인 플랫폼을 이끌게 된 TcAM의 초대 관장 라이이신(Yi-Hsin Lai, b. 1980)은 독립 큐레이터 출신으로 자이현의 시립미술관 관장을 거쳐 40대에 새 랜드마크의 수장이 됐는데, ‘파격적 발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대만의 미술관 생태계도 관장 자리에 있어서는 자못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와서다. 알고 보니, 필자는 그녀가 2019년 MOCA 타이베이의 한 전시에 기획자(독립 큐레이터)로 참여했을 때 미술관에 들렀다가 스쳐 지나간 인연이 있었다. 당시 형식도, 메시지도 출중한 전시를 인상 깊게 봤는데, 누군가 대략 이렇게 소개했다. “니콜(라이이신의 영어 이름)은 곧 지역의 미술관을 이끌게 됐어요. 젊은 나이에 이례적인 발탁이죠.” 얼굴을 잊고 있었는데, 현지에서 다시 만난 니콜을 보자 기억이 발동해 반가움이 앞섰다. “꽤 화제가 됐던 일이에요. 왜냐하면 학계 출신이 아닌 인물을 채용한 건 처음이었어든요. 게다가 당시 저는 마흔도 되지 않았죠.” 그녀는 기획자로서의 평가가 좋았던 데다 자격 요건에 필요한 박사 학위를 지니고 있었고, 마침 자이현 출신이기도 했으니 운과 실력이 맞아떨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라이이신 관장이 꾸리는 TcAM 팀도 젊고 열정적인데, 한눈에 봐도 수평적 관계와 내·외부의 큐레이터 조합이 균형적이라 앞으로의 행보도 자연스레 기대가 된다. 중요한 작가를 다수 배출한 타이중의 미술사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외에도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등 다학제적 전시의 가능성을 열어뒀기에 더욱 그렇다. 작은 비엔날레급이었던 TcAM의 개관전 <모든 존재의 부름: 내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요>에서 마주한 한국 작가 문승현의 작업은 그런 기대에 설렘을 보탰다. 뇌성마비가 있는 문 작가가 미술관을 무대로 건축적이고 퍼포먼스적인 차원을 탐구하는 커미션 영상 작업 ‘얇고 투명한 것들에 대하여’를 선보이며 함께 소개한 시가 전해주는 작은 울림은 우리의 발걸음을 여전히 미술관으로 향하게 하는 하나의 소중한 이유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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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닿은 곳은
말들(words)이 잠드는 곳
다시 우리의 자취가 사라져도
슬프지 않은 새벽으로 돌아갈 때
나는 이어져 있는 꿈에 망설여


얇고 말간 눈동자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우리를 이끈다면
내 몸을 울리는 소리는 옛날
한 처음부터 그랬을 마음이지
그래서 나는 물속처럼 걷고 헤엄쳐



문승현, ‘얇고 투명한 것에 대하여
(On Thin and Transparent Things)’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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